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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박춘금 단죄비! 기억하겠습니다

케뿡예린 2023. 1. 12. 18:23

●강원도 정선 화암동굴

가장기억하고 많은사람들이 더 많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료들도 찾아보고 기사들도 검색해봅니다.


천연기념물 제557호인 화암동굴(옛 천포금광)은 일제강점기 반민족 악질 친일파 박춘금이 1932년 부터 1945년 8월까지 14년 간 운영했던 금광이다. (현 화암동굴)이 관광지를 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과 후세들을 위한 반민족 친일 교육의 장과 친일파 연구 자료로 활용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박춘금의 반민족 친일 행각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 정의 실천에 앞장서는 대한민국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현 화암동굴에 단죄하는 마음으로 단죄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단죄비에는 지난 1891년부터 1973년까지 박춘금의 초년기 생활부터 일본으로의 이주, 깡패 활동, 제국의회 및 정치깡패 활동, 광복 이후 및 사후 등 친일 행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천포금광(현 화암동굴)을 운영하면서 캐낸 금을 일제 군수물자 조달에 쓴 박춘금은 정치깡패이자 악질 친일파로 일제 본토에서 중의원에 두 번이나 당선될 정도로 뼛속까지 친일파인데다 조선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것은 물론 1945년엔 대의당 당수 자격으로 불령선인 30만을 죽이자고 주장했던 자”였다.

30만 명 학살 계획”

1945년 2월 ‘미영격멸(米英擊滅), 내선단결(內鮮團結), 성전필승(聖戰必勝)’을 구호로 내건 야마토동맹(大和同盟) 이사로 선임됐으며, 대의당을 만들고 당수가 됐다.
1945년 6월 25일 박춘금이 창당한 대의당에는 극렬 친일파들이 대거 가담했으며, 극단적인 내용을 당 강령으로 삼고 있다. 대의당 강령에 따르면 “오등(吾等)은 모든 비결전적 사상(事象)에 대하여는 단연 이를 분쇄하여 필승태세의 완벽을 기함”이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비결전적 사상’이란 일본, 한반도, 만주 지역에 반일세력이나 항일세력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들을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춘금은 일제 당국 협조하에 각 지역 반일·항일 인사 30만 명을 체포해 사살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1945년 8월 8일부터 전국에서 반일·항일인사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됐다. 약 3000명이 전국 형무소에 구금됐고, 이들에 대한 총살처분이 논의됐다. 만약 총살처분이 결정나면 박춘금과 대의당원들이 이 일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예상 보다 일찍 항복함으로써 대학살 사태는 면하게 됐다. 박춘금은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되자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 그의 부하를 통해 건국준비위원회 측에 ‘치안대 경비로 써 달라’며 20만 원의 거금을 건넸다. 그러나 건국준비위원회 치안대장 장권은 ‘이 돈은 받을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며칠 후 박춘금은 건국준비위원회 재정부장 이규갑에게 40만 원의 돈과 자기 소유의 금광, 자동차 등을 모두 건준에 바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규갑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조선에서 입지에 불안을 느낀 박춘금은 몰래 일본으로 들어갔다. 1949년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 1급 피의자’로 박춘금을 지명수배하고 당시 일본을 통치하고 있던 미 군정 맥아더 사령관에게 박춘금 체포를 요구했다. 그러나 반민특위가 얼마 후 해체됨에 따라 박춘금 체포는 이뤄지지 않았다. 박춘금은 이후 재일교포 사이에서 유지로 활동했다. 재일교포 조직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고문을 맡았으며 1957년에 일한문화협회 상임고문, 1962년 아세아상사 사장을 엮임하고 1973년 3월 31일 도쿄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82살이었다.
죽은 후 그의 시신은 경남 밀양시 교동 900번지 선산에 묻혔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1992년 일한문화협회가 박춘금 무덤 옆에 그의 송덕비를 세우면서 사람들에게 이 무덤이 알려졌다. 2002년 경남 밀양지역 시민단체들이 박춘금 송덕비를 깨뜨리자, 무덤에 대한 철거 논의가 일었다. 이때 밀양 동부순환도로에 박춘금 무덤 일대가 부지로 편입됐고, 밀양시는 박춘금의 딸에게 보상비를 지급하고 무덤 이전에 합의했다. 박춘금의 무덤은 2006년 밀양 동부순환도로 공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

 
●신문기사
1. 3·1절 맞아 세워진 친일파 박춘금 단죄비
출처 : 강원일보 | 네이버
- https://naver.me/x4iDuW9T
2. 3화. 깡패에서 일본 국회의원이 된 극렬 친일파 박춘금 - https://naver.me/xdk1kukK
3. "밀양 영남루 마당에 '친일파 박춘금 단죄비' 세워야" 출처 : 오마이뉴스 | 네이버
- https://naver.me/xkq2qAY8

●<참고자료>
[도서]정운현, <친일파는 살아 있다>, 책보세, 2011
[도서]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편집부, 2009
[자료집]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관계사료집>, 2009
[논문]정혜경,「1920년대 재일조선인과 민족운동」, 2003
[논문]김명섭, 「1930년대 재일조선인 아나키스트들의 활동과 이념」, 2003
[논문]노주은,「관동대지진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정책」, 2007
[논문]김인덕, 「상애회 연구-1920년대의 조직과 활동을 중심으로」, 2002
[논문]지승준, 「일제시기 참정권운동 연구, 2011
[논문]전기호, 「일제하 재일조선인 차가난(주택난)에 대한 연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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